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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젊은 미망인의 눈물-재난에서 살아남은 것이 우리에겐 재난입니다

  • 2008.05.16
  • 조회수 : 9943

미폭발 폭탄이 라오스 어린이들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 2008.04.04
  • 조회수 : 10220

파푸아뉴기니 소녀 베스시바의 꿈 - 물이 부족하지 않은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 2008.03.11
  • 조회수 : 11071

나이지리아 소녀들의 희망 - 여자어린이 교육 프로젝트

  • 2008.01.08
  • 조회수 : 11072

브라질 거리의 아이들

  • 2007.12.07
  • 조회수 : 11461

소말리아 아이들의 평화학교

  • 2007.10.12
  • 조회수 : 15814

성냥공장 노동자 카비샤, 4년만에 학교로 돌아오다

  • 2007.08.20
  • 조회수 : 9866

동티모르 사태 1년 후, 딜리의 난민캠프 아이들

  • 2007.08.07
  • 조회수 : 9439

수단 다르푸르 야라학교 아이들

  • 2007.07.30
  • 조회수 : 10484

다카의 빈민 어린이들에게 찾아온 희망

  • 2007.04.11
  • 조회수 : 10536
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젊은 미망인의 눈물-재난에서 살아남은 것이 우리에겐 재난입니다

미얀마  Pyapon 마을의 Leikkukone 탑 사원에서 지내고 있는 마수수 (가명, 26, 사진 중앙)와 그녀의 세 살 배기 딸은 미래에 대한 꿈을 잃어버린 채 하루 하루 굶주림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곳에  들이닥친 사이클론은 평화롭던 마을을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비옥한 삼각주 지대는 황폐한 땅으로 변했습니다.이  사원에는 3천여 명의 이재민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지역 당국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정부운영의 임시캠프로 이동하라고 명령했지만 마수수는 이 곳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좁고 불편한 데다 구호품도 부족하지만 고향 친구들이 여기에 있고,  딱히 갈 친척집도 없기에,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 UNICEF Myanmar/2008/from video    “나르기스가 마을을 덮친 날은 둘 째딸의 첫돌이었어요. 저녁 무렵부터 강한 바람이 불고 하늘이 몹시 어두웠어요. 밤 아홉 시쯤이나 되었을까요. 가족들 모두 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물이 밀려 들어왔지요. 눈을 뜨자 집 안팎 이곳 저곳에 물이 가득한 광경이 들어왔어요. 계속 쏟아져 들어오는 물 때문에  집은 무너졌고, 곧 물에 휩쓸려 사라졌어 요. 우린 높은 곳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붕괴된 건물의 잔해와 나무들이 우리를 계속 때렸어요. 물 속에 휩쓸렸을 때 두 딸을 품에 꼭 안고 있었지만 작은 아이가 제 품 안에서 심하게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아이를 놓치고 말았어요. 남편은 딸을 구하러 쫓아갔고, 그것이 제가 본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어요. 저는 한 손으로 큰딸을, 다른 한 손으로는 나무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제 몸을 지탱했어요. 자정 무렵이 되어 동네 이웃들이 저희 모녀를 발견할 때까지 계속 그렇게 매달려 있었어요. 제 얼굴과 팔은 피로 범벅이 되었지요. 하지만 우리 모녀의 비극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랍니다.   살아 남은 생존자들은 마실 물과 식량을 얻기 위해 하루하루 투쟁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괴 재산을 모두 잃었습니다. 지금 제가 가진 전부는  살아남은 딸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재난에서 살아 남았다 고 말하지만, 재난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그 자체가 또 다른 재난입니다.”Pyapon 마을에는Leikkukone 사원과 같은 임시 거처가 45곳이 있습니다. 재난 발생 첫 주에, Ayeyarwady 지역에서만 임시거처를 필요로 하는 이재민의 수가  17,000명 이상이었습니다.  마을 당국이 음식을 나눠주고는 있지만, 이재민들이 필요로 하는 양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유니세프는 미얀마 적십자와 함께 사이클론 피해 지역에 식수 정화제, 구강수분보충염, 응급치료키트, 필수의약품, 방수포, 생활용품 등의 긴급구호품들을 신속히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더 많은 구호 물자가 필요합니다.  취재 : 산드라 린( Sandar Linn)

미폭발 폭탄이 라오스 어린이들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지난 1월 17일 귀를 찢는 굉음이 라오스 남부 지역 Ban Phonehai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조용했던 시골마을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폭발 직후 마을 사람들은 폭발음이 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폭발한 것은 2차 인도차이나 전쟁 때 투하됐던 미폭발 폭탄(unexploded ordnance; UXO). 처참한 현장에는 폭발된 대포조각들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현장의 상황을 본 후 더욱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이 목격담을 전했습니다. “현장에 갔을 때 두 어린이는 이미 즉사한 후였고, 다른 두 어린이는 끔찍한 부상을 입고 심하게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폭발 현장에 있던 나머지 어린이들도 부상을 입었지만,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은 아이들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마을로 달려왔습니다. 10살짜리 소년, Ta Ngae는 고개를 떨구며 말합니다.“바로 우리 앞에서 친구들이 죽었어요. 우린 그 순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이번 사고로 총 4명의 소년이 사망했고, 5명의 남녀어린이들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12살인 Vi는 동네 병원으로 가는 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올해 라오스에서 일어난 가장 끔찍한 미폭발 폭탄 관련사고 중 하나입니다.“어린이 4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이번 사고는 끔찍한 비극입니다. 살아남은 5명의 어린이들과 피해 가족, 마을 모두가 오랫동안 고통받을 것입니다.” 유니세프 라오스의 어린이 보호사업부장인 Victoria Juat는 말합니다. 신체적, 정신적 상처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Luc Delneuville는 폭발이 발생했던 사바나켓 지방에서 미폭발 폭탄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활동하는 NGO ‘벨기에국제장애단체(HIB)’의 프로그램담당관입니다. 그는 사고로 팔과 두 다리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아이들의 경우 신체적인 상처보다 정신적 상처가 훨씬 더 심각하다고 경고합니다.“어린이들은 사고 후에도 그들에게 일어난 비극에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을 포함한 심리적 치료가 매우 중요합니다.”이번 사고는 종전이 30년 이상 지났지만, 미폭발 폭탄이 얼마나 오랫동안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1960년대 말에서 1970대 초 사이에 약 2백만 톤의 폭탄이 라오스에 투하됐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전세계에서 1인당 가장 많은 폭탄을 떨어뜨린 경우입니다.투하된 폭탄의 약 30%가 전쟁 당시 폭발하지 않은 채 땅에 매장됐고, 현재 이러한 미폭발 폭탄들이 심각한 인명 피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 해 한 해에만 약 99 명의 사상자가 보고됐지만 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최근 수년 동안 라오스에서 일어난 지뢰 사고의 희생자 중 최소 절반이 어린이들입니다. Ban Phonehai 마을에서 터진 폭탄과 비슷한 종류인 테니스 공 크기의 집속탄을 어린이들이 가지고 놀면서 수많은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어린이들이 폭발 잔해에서 모은 금속 조각들을 모아서 판다는 사실입니다. 상대적으로 빈민이 많고 미폭발 폭탄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들에서 이러한 거래가 성행하고 있습니다.유니세프, 미폭발 폭탄의 위험성 알리려 노력(← 지뢰위험지역에서 유니세프의 지원으로 진행되는 지뢰 경고 교육)유니세프는 HIB와 같은 NGO 단체들과 라오스 정부가 미폭발 무기의 위험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전국 곳곳에 묻혀 있는 미폭발 폭탄 문제를 추적해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상자를 돕고 치료하는 일부터 사고 예방을 위한 메시지 전달 캠페인, 추적 과정을 분석하고 관리할 수 있는 국가 데이터까지 수많은 통합적 접근법이 요구됩니다.” 라고 Victoria Juat는 설명합니다.이를 위한 중요한 방법이 지뢰의 위험을 경고하는 교육입니다. 유니세프는 부모들이 미폭발 폭탄 및 무기 잔해를 모으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지 자녀들에게 심각성을 경고하도록 진행되는 HIB의 시범참여학습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Victoria Juat 부장은 당부합니다.“유니세프가 미폭발 폭탄제거활동을 진행하는 동안 라오스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직면해 있는 위험을 이해하고, 행동을 바꾸도록 하며, 위험 물체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지 학습해야 합니다. 특히 전쟁에 대한 기억이 없고, 미폭발 폭탄의 위험을 부분적으로만 경험한 젊은 세대들에게 이는 더욱 중요합니다. 유니세프는 라오스 정부가 지뢰 금지 조약 및 관련 협정들을 비준하기를 희망합니다. 지금 지뢰를 비롯한 전쟁의 폭발 잔여물들이 라오스 어린이들의 생명과 미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파푸아뉴기니 소녀 베스시바의 꿈 - 물이 부족하지 않은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올해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베스시바의 아침 등교길은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강가에서 세 살 터울의 여동생 조지나와 함께 세수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세수가 끝나면 두 자매는 각자 가져온 큰 물통에 물을 담습니다. 학교에 가져가기 위해서입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로 강에 들러 물을 떠 옵니다. 이 일은 베스시바가 지난 5년간 매일 해온 일입니다.베스시바가 다니는 코글램 초등학교는 지난 몇 년 동안 물 부족 문제로 여러 차례 수업을 중지하고,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곤 했습니다.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그 시간들이 베스시바는 너무도 아깝습니다. 베스시바는 이런 상황이 앞으로 계속 반복되어 학업에 피해를 주게 될까 봐 걱정입니다.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은 베스시바 만이 아닙니다. 7학년 진급을 앞두고 함께 경쟁하는 학급 친구들 모두 같은 걱정을 합니다. 8학년까지 마쳐야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지만 수업 시간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베스시바와 친구들은 물 부족 문제를 겪는 건기에는 하루에 반나절만 학교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학교의 식수공급원이라고는 모기들이 서식하는 800 갤런 물 탱크 하나가 전부입니다. 물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7~8년 선배들이 하루 종일 수업을 듣는 날엔 우리는 일찍 집에 가야 해요.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많이 뛰면서 놀지 말라고 늘 말씀하세요. 학교에 마실 물도 없는데 너무 뛰면 쉽게 목이 마르게 되니까요.” 베스시바는 그렇게 말합니다.건기가 되면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신이 마실 물을 각자 학교에 가지고 오도록 합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파푸아 뉴기니에서 여자어린이의 지위는 매우 낮고, 삶의 선택권도 없습니다. 인생의 선택권을 부모가 쥐고 있기 때문에 절대 복종해야 하고 대부분 어린 나이부터 동생을 돌보고 집안의 허드렛일을 거드는 등 많은 노동을 합니다.베스시바나 다른 여형제들은 부모로부터 특별한 지원이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들과 어린 나이에 결혼을 강요당하기도 합니다. 이 변하지 않는 강력한 관습으로 특히 파푸아뉴기니 고지대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매우 낮은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남자어린이들은 여자어린이보다 교육에 있어 항상 우선권을 가집니다. 여자어린이들은 일단 학교에 입학하더라도 등록금을 내지 못하거나 학교에 적절한 식수와 화장실 시설이 부족한 이유로 인해 도중에 학교를 그만둡니다.선생님이 되고 싶어요.“여동생과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있으니까 저는 아주 운이 좋은 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들 학비를 버느라 애쓰는 아빠에게 너무 감사해요.”베스시바는 방과 후 오후 내내 정원에서 잡일을 하고 주말에는 동생과 함께 마켓에서 음식을 팝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교육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매우 진지하게 학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베스시바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열심히 공부합니다. 5학년 때에는 학급에서 2등을 해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학교에 다니고 싶어하는 베스시바에게 학교의 식수 부족은 아주 큰 문제입니다. 베스시바가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도시의 학교들처럼 코글램 초등학교에도 충분한 식수가 공급 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학교 수업이 취소되거나 단축되는 날이 저는 정말 싫어요.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공부해야 시험을 잘 치를 수 있고, 그래야 제가 원하는 선생님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학교에 물이 부족한 날에는 잊지 말고 집에서 커다란 물통을 가져와야 해요.” 어린 베스시바가 결연한 표정으로 얘기합니다. 파푸아뉴기니 농촌지역 학교들이 겪는 물 부족 문제는 많은 학생들의 학업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에서는 학교에 적절한 식수공급시설을 만드는 일을 국가의 우선사업이 아닌, 학부모와 학교가 책임질 문제로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인구의 약 85%가 일정한 수입 없이 살아가는 파푸아뉴기니 농촌지역에서 학부모가 돈을 모아 적절한 식수시설을 학교에 만드는 일은 요원한 과제로 보입니다.2년 후 식수시설이 완비된 도시의 중학교로 진학하면 물 걱정 없이 하루 종일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베스시바는 믿습니다.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베스시바는 매일 아침 1리터의 물통에 물과 희망을 가득 채운 채 학교로 향합니다.

나이지리아 소녀들의 희망 - 여자어린이 교육 프로젝트

나이지리아 북쪽 바코리 지방의 나다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어린 학생들이 신나게 뛰어다닙니다. 아이들은 원을 그리며 운동을 하는 중입니다. 지금은 체육시간. 여선생님의 지도 아래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은 모두 흰색과 녹색으로 된 교복을 입고 있습니다. 여자어린이들은 긴 히잡을 머리에 쓴 채 운동을 합니다. 히잡 착용은 이 지역 전체의 전통입니다.(← 여자어린이 교육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UNICEF는 나이지리아 북쪽 지방의 720 개 학교에 학습교재를 무료로 공급했습니 다. 바실라(10, 가운데)는 이 프로젝트 수혜자 중 한 명입니다. © UNICEF Nigeria/2007/Nesbitt)교문 밖에는 전혀 다른 모습의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의 아이들이 머리 위에 큰 쟁반을 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여자 어린이들입니다. 머리 위 쟁반에는 빵과 땅콩 등이 있습니다. 교문 안 친구들에게 팔 간식거리입니다.장사를 하는 아이들 무리 속에서 열 두살의 자밀라를 만났습니다. 자밀라는 매일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채소를 팝니다. 학교를 그만둔 지는 벌써 4년이 됐습니다.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어요. 교복이 없어서 학교를 계속 다닐 수가 없었지요. 엄마는 제가 돈을 벌어오기를 원했어요. 그럼 언젠가 그 돈으로 교복을 사서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라고 했죠. 하지만 벌써 4년이 지난 걸요.”자밀라는 가난 때문에 학교를 떠나야 하는 수많은 여자 어린이들 중 한 명입니다. 나이지리아 북부지역에서는 취학연령 어린이 중 40%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화되는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이지리아 정부와 유니세프는 다른 협력단체들과 함께 여자어린이 교육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더 많은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니도록 하는 한편 초등과 중등교육에서 남녀간의 성 격차를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유니세프영국위원회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5천만 불 지원을 약속했고 여기에 힘입어 사업은 현재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습니다.바실라도 자밀라와 마찬가지로 1년 전 부모님으로부터 학교를 그만 두라는 강요를 받았습니다.“부모님은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비를 벌어 오라고 했어요. 그 얘기를 듣고 너무 슬펐어요. 전 정말 계속 학교에 다니고 싶었거든요. 학교에 가고 싶어 거의 열병을 앓았어요.” 다행히도 바실라가 학교 밖에 있었던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여자어린이 교육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나이지리아 북쪽의 700개 이상의 학교에 학습교재가 무료로 제공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실라와 같이 가난한 많은 어린이들 가정에는 이러한 지원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바실라가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는 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교과서와 책가방을 무료로 나누어 준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귀가 솔깃했죠. 어렵긴 하지만 바실라를 학교에 다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7남매를 키우고 있는 바실라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합니다.(← 나이지리아 북쪽 Bakori의 Nadabo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유니세프가 제공한 책가방을 멘 소년, 소녀들이 체육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 UNICEF Nigeria/2007/Nesbitt)교육의 중요성학교로 돌아간 바실라는 놀라운 변화를 보았습니다. 열악하기 짝이 없던 학습 환경이 넓고 쾌적하게 바뀌어 있었던 것입니다.“학교의 모든 곳들이 깨끗해졌어요. 너무 좋아요.” 주 정부가 재건축한 학교를 보며 바실라는 얘기합니다. 이제 학교엔 남녀 화장실이 각각 분리되어 설치됐고, 식수를 얻을 수 있는 펌프도 생겼습니다. 교사들도 이 프로젝트 덕분에 아이들을 보다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습니다.학교로 돌아온 바실라는 열심히 공부를 했고 이제 학급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 되었습니다. 교육에 대한 바실라의 생각은 아주 확고합니다.“교육은 정말 중요해요. 한 사람이 교육을 받아 의사가 된다고 해 보세요. 그러면 그 사람은 많은 엄마들이 아기를 건강히 낳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잖아요.” 나이지리아에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교육 기회를 갖지 못하는 수 많은 소녀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바실라는 더 열성적으로 공부합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바실라는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을 아버지에게 읽어주고, 보여주기를 좋아합니다. 바실라의 우수한 성적은 보잘 것 없는 수입으로 일곱 명의 자녀들을 키워야 하는 아버지에게 미소를 가져다 주는 유일한 기쁨 입니다. 바실라 옆에서 누나의 우수한 성적을 부러워하는 어린 남동생이 누나의 책가방을 메 봅니다. 유니세프가 지원해준 파란색 책가방입니다. 책가방에는 크고 분명하게 어린이교육을 상징하는 슬로건이 새겨져 있습니다.‘저를 학교에 보내 주세요!’

브라질 거리의 아이들

브라질의 산타 테레사 지방의 아동청소년보호센터 CRIA 본부를 찾았을 때 열 다섯 살 소년 망고(사진)는 건물 뒤편에서 교사들과 함께 모노폴리 게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셔츠 없이 바지만 입은 편안한 차림으로 카드와 주사위를 돌리며 게임에 푹 빠져 있는 망고의 모습은 영락 없는 장난꾸러기 소년이었습니다.“저도 평범한 행복을 느껴보고 싶어요."2004년 이 곳에 들어와 재활훈련을 받았던 거리의 소년 망고는 지금은 가족과 함께 살지만 새로운 삶을 찾아준 이 곳에 가끔 찾아오곤 합니다. 망고는 아주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망고는 부모와 4명의 형제 자매가 있는 브라질의 전통적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망고가 자란 올린다 시는 인구의 약 40%가 판자촌에서 빈민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도시였습니다.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폭력적인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녀들을 끊임 없이 구타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심한 구타로 어머니가 6개월간 실명한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갈등은 계속 심화되었고 결국 열 살 되던 해 망고는 집을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출을 했다가도 다시 마음을 바꿔 집으로 돌아가곤 했지만 그 때마다 집안분위기는 여전히 싸움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망고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날 한 대라도 치면 나도 똑같이 되갚아 줄 거에요.” 그리고, 그 날은 망고가 가족, 친구들과 영영 헤어져 거리의 삶을 살게 된 시작이 되었습니다.망고는 그 날부터 5년 동안 거리에 살면서 수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망고는 정확히 자신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거리에서 사는 동안 또래집단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고 말할 뿐입니다.CRIA 센터는 2004년 8월 7~15세의 거리의 어린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올린다 시 당국이 세운 곳입니다. 망고는 당시 이 곳에서17명의 소년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이 곳에서는 거리의 어린이들을 집과 학교에 돌려보내고, 가정 및 사회에 다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망고는 이 곳에 와서도 거리에서 살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본드를 흡입하고, 불량한 생활을 하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망고에겐 아무 희망도 없었습니다. 망고는 살인자가 되고 싶다는 등 공격적인 언사를 쉽게 내뱉곤 했습니다. CRIA에 들어온 후, 망고는 다시 가족과 연락이 닿았지만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사는 이산가족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지역에서 여동생 두 명과 함께 살고 있었고, 아버지  는 일정한 일거리 없이 홀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망고는 형의 집에 살고 있습니다. 형이 사는 집은 협소한 데다  형의 친구들도 함께 지내고 있어 아주 좁습니다.  지금 이루어진 망고의 새 가족은 2명의 어린 남동생과 형, 형의 친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망고가 거리에서 사는 동안 어린 동생이 하나 더 생긴 것입니다. 형 크리스티아노는  거리의 재활용 폐휴지를 모아서 파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쉬는 날은 2주일에 하루 뿐입니다. 새벽부터 해질 때 까지 노동을 해서 생계비를 법니다. 망고의 어린 남동생은 형의 친구들이 돌보고 있습니다.그러나 망고는 PAI (어린이청소년통합관리정책)가 지원하는 5천 명이 넘는 거리의 아이들 중 한 명일 뿐입니다. 유니세프가 PAI를 지원하고, 올린다 시 당국이 해당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습니다.유니세프는 망고와 같은  거리의 어린이들이 희망을 되찾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올린다 시 당국의 사회 사업 관계자와 NGO기구, 기금 모금 단체, 재단 등을 모두 지원합니다.  망고는 말합니다. “저도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을 경험하고 싶어요. 가족들이랑 바다에도 가보고 싶고요.” 망고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폭력과 가정 붕괴를 겪는 수많은 청소년 중 한 명일 뿐입니다.(↓ 브라질 올린다 시의 쓰레기장 전경.  많은 거리의 아이들이 이 곳에서 폐휴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UNICEF/HQ00-0353/Alejandro Balaquer )

소말리아 아이들의 평화학교

소말리아 준자치 지역 푼트랜드에 속한 북동부 지역 무도그의 수도 갈카요. 이 곳은 1991년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17년째 분쟁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 결과 삶의 터전들이 파괴되었고, 사람들의 마음에는 미움과 증오만이 남았습니다.2007년 9월 이 곳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남과 북의 경계지역에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함께 다닐 수 있는 초등학교가 세워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이름은 ‘갈카요 평화학교’입니다. 이 학교에서는 ‘평화교육’을 교육과정에 포함해 가르칠 것이며. 학생과 교사, 교육위원회도 모두 남과 북이 절반씩 섞여서 구성될 것입니다.현재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이 평화학교 건립을 제안한 것은 바로 유니세프였습니다. 유니세프는 오염된 식수와 열악한 주거 문제로 논쟁을 벌이는 남과 북측을 중재하던 중에 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학교가 세워지는 경계지역은 ‘그린라인’으로 불리는데 학교도 없을 뿐 아니라 성폭행과 마약, 폭력 등 잦은 범죄 때문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보내기 꺼리는 공포의 지역이었습니다.“남쪽 친구들과 친해졌으면 좋겠어요”갈카요 북쪽에 살고 있는 열 한 살 난 소녀 히보는 말합니다. 새롭게 세워지는 평화학교 근처에 사는 히보는 지금까지 남쪽 친구들과 어울려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합니다.(← 평화학교의 개교를 손꼽아 기다리는 열 한 살 소녀 히보. 갈카요 북쪽 마을에 살고 있다.  ⓒ UNICEF Somalia/07-07-2/NEZoffice)“남쪽 출신의 오빠나 언니들이 짓궂게 아이들을 괴롭히고 아이들을 때리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남쪽 아이들을 ‘폭력의 아이들’이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저는 남쪽 아이들과 한 마디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을 알고 쉽고 함께 공부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요.”  히보는 자신이 사는 집 바로 옆에 평화학교가 세워진다는 사실이 너무 기쁩니다. 지금 다니는 학교는 30분 넘게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평화학교가 열리면 꼭 다닐 거예요. 새로운 학교가 집 바로 옆에 생긴다는 게 너무 신나요. 더 이상 멀리까지 힘들게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되잖아요. 예전엔 학교 가는 길에 나이 많은 언니나 오빠들이 괴롭히곤 했거든요.”유니세프와 지방정부의 지원으로 예전에는 한 번도 협력한 적 없는 남과 북의 지역사회 인사들이  땅을 함께 기부하고, 학교를 지었습니다. 학교가 열리면 6세~14세 어린이 600명이 읽기와 쓰기, 산수, 과학, 사회, 이슬람 교리 등을 배우게 됩니다. Maurice Robson 유니세프 소말리아 사무소 교육담당관은 말합니다.“이 평화학교는 갈카요 지방 뿐 아니라 소말리아 전체에 큰 의미를 지니는 건물입니다. 완전히 분리되어 서로 적대시하던 두 지역의 사람들이 어린이 교육을 위해 함께 협력해 일하는 동료가 되었으니까요. 소말리아의 다른 지역에 좋은 본보기가 될 뿐 아니라 어린이 교육을 개선하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서로를 미워하던 두 지역 주민들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평화학교를 통해 얻은 이러한 변화는 아이들의 교육내용에도 반영될 것입니다.” 남과 북, 양 지역 주민들은 3,000 평방 미터의 학교부지를 공동으로 마련했고, 학교가 완공되면 교사들의 월급도 함께 조달하기로 했습니다. 학교에는 4개의 교실과 위생적인 화장실과 급수시설, 급식소 등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수업할 수 있는 모든 설비가 갖추어질 것입니다.  학교 근처 북쪽 마을에 살고 있는 다섯 살 난 아이의 엄마인 Fadumo Abdi는 새 학교의 완공이 반갑고 기쁘기만 합니다.“우리 마을 어린이들이 이제 평화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지금까지는 우마다 초등학교에 다녀야 했는데 그 학교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복잡한 데다 등하굣길이 멀어서 위험했답니다. 안전문제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아예 학교에 보내지 않았지요. 남과 북의 경계선에 학교를 세운다는 건 정말 멋진 생각이에요. 제 아이도 나중에 이 학교를 다니면서 남쪽 아이들과 사이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해요. 저 또한 남쪽 아이들의 부모들과 잘 지내고 싶어요. 이 학교가 갈카요의 남북 관계를 굳건하게 해 줄 거라고 믿어요.”(← 유니세프소말리아 사무소 Balslev-Olesen 대표가 갈카요평화학교 부지를 방문했습니다. 4개의 교실과 식수, 화장실을 완벽하게 갖춘 안전한 학교가 세워질 것입니다.  ⓒ UNICEF Somalia/07-07-2/NEZoffice)평화학교는 이제 남과 북의 닫혔던 마음을 이어주는 우정의 다리가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어른들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게 되었습니다. 갈카요 평화학교를 함께 만들어가면서 남과 북은 이제 친구가 되었습니다.   

성냥공장 노동자 카비샤, 4년만에 학교로 돌아오다

소녀의 이름은 카비샤. 인도 타밀 나두 주에 살고 있으며, 나이는 14살입니다. 지금은 연필을 들고 책상 앞에서 활짝 웃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비샤는 연필 대신 성냥공장에서 쓰이는 화학물질을 쥐고 있었습니다. (→ 노동 현장에서 구출되어 학교로 돌아온 카비샤 (14세)가 환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 Ranjan Rahi / UNICEF)폭죽산업으로 유명한 시바카시 마을의 성냥공장에서 열 살 때 일을 시작한 카비샤는 몸에 해로운 성냥개비의 가연성 화학물질을 마시며 성장했습니다. 아버지가 생계를 책임졌을 때는 학교에 다녔지만 아버지가 사망하자 6명의 형제 자매들은 어린 두 동생만 빼고 모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성냥공장에서 보낸 카비샤의 소녀시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했습니다. 독풀과 화학물질을 만져 손을 까맣게 변했고, 나쁜 공기 속에 하루종일 쭈그리고 앉아 일하는 바람에 허리병과 기침이 끊이지 않았습니다.“처음엔 오직 하루 일당, 30루피 (700원)를 벌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당시엔 무얼 해야 옳은 지 아무 생각도 없었죠. 관심은 오직 제 일당이었어요. 화학물질을 계속 만지다 보니 몇 개월 만에 손이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어요.”  하루 쉬면 하루 일당을 벌 수 없다는 생각에 카비샤는 몸이 아플 때도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점점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그리워졌어요. 비록 얼마 못 다니긴 했지만 공부도 잘 했고, 선생님한테 칭찬도 많이 들었거든요. 매일 공장에서 벗어나 학교에 돌아갈 날을 꿈 꾸었던 것 같아요.”카비샤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유니세프가 인도 정부와 함께 진행한 어린이노동자 보호 프로젝트 덕분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유니세프의 활동가들이 카비샤를 노동현장에서 구출해 학교에 등록시켜 준 것입니다. 유니세프와 인도 정부는  어린이 노동이 심각한 타밀 나두 주 마을들에 어린이 노동에서 해방된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학교를 세웠습니다. 이 학교에서 기초학력을 쌓은 뒤 아이들은 일반학교에 가게 됩니다. 카비샤는 이 학교에서 모자란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 일반학교 학생들보다 오히려 훨씬 빠른 학습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학력이 우수해 카비샤는 14세 나이에 맞는 일반학교의 8학년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유니세프 타밀 나두 사무소 Tim Schaffter 대표는 말합니다.“많은 어린이들이 일터를 떠나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유니세프가 어린이노동자들을 학교로 돌려보내는 어린이노동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합니다.”  타밀 나두 주에서 가장 문맹률이 높고, 개발이 뒤떨어진 지역인 다르마푸리 지역에만도 이러한 학교가 19개나 있습니다. 유니세프가 지원하는 이 학교는 정규 학습과정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잃어버린 유년기의 기쁨을 되돌려 주는 수업도 집중적으로 합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노래와 춤, 연극 등을 배우도록 권장하는 한편 어린이들이 노동의 부담을 벗고, 상처를 극복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곳에서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칠판에 적어서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상호교류하는 방법으로 학습이 이루어집니다. ( →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카비샤  © Ranjan Rahi / UNICEF )유니세프와 인도 정부가 실시한 전국 어린이노동 프로젝트 덕분에 1996년 이후로 3,600명 이상의 어린이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초기에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노동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대개가 아이들의 수입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를 학교에 보내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에 인도 정부는  노동을 그만두고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일반 학교의 정규과정에 편입할 때까지 한 명당 한 달에 100루피의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카비샤 또한 학교로 돌아오기까지 힘든 과정을 거쳤습니다. 엄마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지친 엄마는 카비샤가 공장에 다니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고, 딸이 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지 그 중요성을 인식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니세프의 활동가들과 카비샤는 끈질기게 엄마를 설득했고 마침내 카비샤의 엄마는 학교에 가는 것이 딸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제 카비샤에게는 공장 동료가 아닌 같은 반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아직까지 카비샤의 손에는 성냥공장의  화학물질 잔재가 까맣게 남아 있지만 이제 그녀는 누구보다 글을 잘 쓸 수 있고,  누구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제 생각이 옳았다는 걸 가족들 모두에게 꼭 증명할 거에요.” 그렇게 말하는 카비샤의 눈가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혔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인도의 어린이들이 얼마 안 되는 보수를 받기 위해 교육의 기회를 포기한 채 하루 종일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밀 나두 주에서 유니세프와 인도 정부가 전국 어린이 노동프로젝트를 실시한 후, 카비샤와 같은 수많은 인도 어린이들이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을 되찾고 있습니다. 

동티모르 사태 1년 후, 딜리의 난민캠프 아이들

13살 난 자켈 핀토와 사촌들이 딜리의 한 주차장에서 산 지는 일년이 넘었습니다. 이들은 2006년 5월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에 폭동이 일어나 집이 불에 타고 생명에 위협을 받은 이후 이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유엔 빌딩 앞에 있는 오브리가도 배럭스 주차장에는 폭동이 극에 달했던 한 때, 7천여 명이 피신해 살기도 했는데, 지금은 약 800여 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텐트는 안전을 위해 널빤지로 문을 해서 달고, 예전의 집에서 침대와 선반을 구해 와 지금은 제법 집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동티모르, 딜리의 오브리가도 배럭스 난민 캠프에 있는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에서 어린이들이 술래 잡기 놀이를 하고 있다. ⓒ UNICEF Timor-Leste/2007/See이 난민 캠프에 살고 있는 유니세프 어린이 보호 담당 직원, 마리아 필로메나 벨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곳은 이제 정말 집 같고 동네 같지만, 이렇게 살고 싶어서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집이나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 보았지만 사람들의 위협을 받거나 혹은 동네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다시 몇 주 만에 돌아왔습니다.” 일년 전 동티모르 사태는 시민 폭동으로 시작하였으나 경찰과 군부가 서로 대치하게 되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일부 군인들은 무기를 가지고 산속으로 들어가 아직까지도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동부 지방 사람들과 서부 지방 사람들로 나누어져 대치하는 지역적 긴장 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이 상태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어린이들도 폭력사태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자켈 핀토는 작년 등교 길에 같은 학교 아이들이 시비를 걸어 배에 칼을 맞을 뻔 한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히 그의 가족이 동부 지방 출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제 배를 찌르려는 순간, 주변을 지나던 아주머니가 그 애들에게 소리를 질렀고, 저는 가까스로 도망칠 수 있었어요. 그 와중에도 어떤 아이는 연필로 제 배를 찔러 상처를 내고 옷을 찢었습니다.” 자켈 핀토는 이제 동부 출신 사람들의 피난처가 된 동네에서 학교에 다닙니다. 유엔 경찰의 주둔으로 전반적인 안정은 되찾았지만, 딜리에서는 아직도 폭력 사태가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심리적인 스트레스나, 난민 캠프의 복잡한 주거 환경, 미흡한 안전조치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적, 성적 학대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현재 동티모르 전역에 약 10만 명의 난민들이 있으며, 그 중 약 3만 명이 딜리에 있습니다. 동티모르, 딜리의 오브리가도 배럭스 난민 캠프에 있는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에서 한 여자 어린이가 만들기 블록 놀이를 하고 있다. ⓒ UNICEF Timor-Leste/2007/See폭동 사태가 발생한 직후, 유니세프는 여러 어린이 단체 및 동티모르 정부의 사회복지담당부서와 함께 어린이 보호 지원단을 구성했습니다. 이 어린이 보호 지원단은 지원자들을 훈련시켜 각 난민 캠프에 어린이 보호 담당자로 배치하고, 어린이들을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을 맡도록 했습니다. 어린이 보호 지원단은 힘든 일을 겪은 어린이들이 운동과 여가 활동을 즐기면서 마음의 상처를 떨칠 수 있도록 난민캠프 안에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유니세프는 난민캠프에 축구공과 줄넘기, 배구공 등이 들어있는 놀이용품세트 161개와 만들기 블록 116 세트, 손으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 500개를 배포했습니다. 유니세프 직원 마리아 필로메나 벨로는 난민 어린이를 위한 활동을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연극, 구연동화, 손 꼭두각시, 노래, 춤 등을 난민캠프 어린이 보호 담당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오브리가도 배럭스 캠프의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은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 아래입니다. 이 공간은 난민캠프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들어오면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로서 어린이 보호 담당자들이 관리합니다. “여기서 배구 놀이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책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아요.” 11살 난 비토리아 다 코스타는 그렇게 말하며 까르르 웃습니다. 비토리아의 친구인 아마랄도 캠프에서 사귄 친구들을 가리키며 얘기합니다. “여기 놀러 오면 밖에서 생기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나지 않아요.” 동티모르, 딜리의 오브리가도 배럭스 난민 캠프에 있는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에서 한 여자 어린이가 유니세프에서 제공한 이야기 책을 읽고 있다. ⓒ UNICEF Timor-Leste/2007/See매일 오후, 나이가 좀 더 많은 어린이들은 방과 후에 이 곳에서 배구를 하며 여가를 즐깁니다. 때로는 집안일을 끝낸 엄마들이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다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뺏어가면 고함을 지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장거리며 걷는 호기심 많은 아이는 확성기를 만지작거리다 크게 한 번 불어봅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은 어린이들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이 공간은 특히 자켈 핀토의 동생 세사리오와 같이 학교를 그만 둔 어린이들이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배움터이기도 합니다. 혼자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는 세사리오는 학교 가는 대신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에 와서 형들과 즐겁게 지냅니다. 여기는 세사리오가 다른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세사리오가 학교로 돌아갈 용기를 친구들로부터 얻게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글: 브리지트 씨이/ 유니세프 동티모르 사무소

수단 다르푸르 야라학교 아이들

수단 다르푸르 남쪽에 위치한 ‘야라라’는 마을은 내전으로 잘 알려진 다르푸르의 황폐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곳입니다. 최근까지도 인종과 부족간의 전쟁으로 긴장감이 가득했던 이 곳은 지금 토착민 푸르족과 유목민 아랍족이 함께 어울려 발전하는 곳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야라 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마을 만들기’ 운동은 지붕, 창문 등 학교 시설을 개선시켰습니다. 현재 4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 UNICEF Sudan/2007/Bakri Mirghani Maki 내전이 끝난 후 마을 주민들은 힘을 모아 어린이 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한때 폐허였던 학교는 이제 아이들의 웃음 소리 가득한 활기찬 곳이 되었습니다. 6~14세 사이의 어린이 400명이 새로 단장한 학교에서 하루 5시간 이상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중 약 100명은 여자 어린이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학생들이 언제든지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학교에 수도를 설치했고 화장실도 새로 지었습니다. 교실에는 책걸상과, 분필, 교과서 등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학부모들로 이루어진 학부형교사모임도 만들었습니다. 8학년 수학 교실에서 만난 암단과 아미드는 열세 살 동갑내기입니다. 아랍족 출신인 두 아이의 부모는 모두 양을 치는 유목민입니다. 이 마을에서 아랍족은 소수민족이지만 아이들의 부모는 3년째 두 소년을 아무 걱정 없이 야라 마을에 남겨두고 유목 생활을 하고 있습니 다. 마을 어른들이 안전하게 아이들을 돌보아주고, 학교에 보내 학업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3세의 암단 (왼편)은 다르푸르 남쪽의 아랍 유목민 가정 출신입니다. 암단의 부모는 아들이 계속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야라 마을 어른들에게 암단을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한 후 계속 유목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소수민족인 아랍족의 암단은 주민들과 평화롭게 지내며 안전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마을 만들기’ 운동이 있기 전까지는 야라 마을에도 종족간의 충돌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 UNICEF Sudan/2007/Bakri Mirghani Maki 엔지니어를 꿈꾸는 아담은 말합니다. “부모님을 따라 유목 생활을 하면 학교가 너무 멀어 다니기 힘드니까 이 곳에서 살라고 부모님이 결정하신 거에요. 학교에 가지 않고 부모님을 따라 다니면 우리는 공부 대신 매일 양을 몰아겠죠. 그랬다면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잃어 버렸을 거에요. 지금은 학교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까 인생을 발전시킬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거라고 믿어요.” 엄마, 아빠를 만나지 못한 지 벌써 석 달. 가족들이 그립긴 하지만, 공부에 대한 열의는 두 소년 모두 대단합니다. 아미드는 지금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될 거라고 얘기합니다. 이 곳의 아랍족은 대부분 가난한 유목민이지만 아이들의 미래에 거는 기대만큼은 남다릅니다. “야라 마을에는 아랍 출신 어린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랍 어린이들의 부모들은 정부 월급을 받지 못하는 자원봉사 교사들에게 월급을 주기도 하고, 여러 방면에서 적극적으로 어린이 교육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야라 학교의 모하메드 이브라힘 카릴 교장은 그렇게 설명합니다. 야라 학교 8학년 수업을 듣고 있는 여학생. 400명 학생 중 4분의 1이 여학생입니다. 마을은 여자어린이 교육권장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모든 취학 연령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 UNICEF Sudan/2007/Bakri Mirghani Maki이러한 변화가 오기까지는 유니세프가 현지 NGO들과 1999년 시작한 ‘어린이에게 친근한 마을 만들기’ 운동이 있었습니다. 이 운동은 주민들이 안전하고, 발전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마을을 총체적으로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 사업의 핵심은 어린이입니다. 카릴 교장은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이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서 적절한 지원을 했기 때문 입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대표 사례가 교육입니다. 이제 학교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민족 어린이들이 차별 없이 다함께 학교에 다니는 모습이야 말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교육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야라 학교는 모든 마을 주민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민족과 부족간의 충돌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수단은 지금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마을에 희망을 가져다 준 야라 학교와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글 : 에드워그 카르와딘/ 유니세프수단사무소 홍보담당관

다카의 빈민 어린이들에게 찾아온 희망

학교에 다니게 된 이브라힘과 리마 올해 일곱 살 난 이브라힘은 초등학교 1학년. 부모는 학교 문턱에도 못 가 본 문맹자입니다. 이브라힘의 부모는 시장에 가서 반찬거리 하나 살 때도 셈을 못해 쩔쩔 매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왔습니다. 집안이 워낙 가난한 지라 이브라힘도 부모처럼 문맹의 대물림 할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브라힘은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제가 학교에 다닌 후로 우리 가족의 생활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셈을 할 줄 아니까 시장에 가서 우리가 산 야채나 과일값을 금방 금방 계산할 수 있지요. 부모님이 번 돈을 어떻게 나누어 써야 하는지 그것도 알게 되었어요. 언젠가 제가 자라서 직업을 갖게 되겠죠? 제가 지금 배우는 셈이나 읽기, 쓰기가 좋은 직업을 갖게 해 줄 거에요” 예전에 아브라힘은 밤이 되면 무척 지루하고 심심했지만 이제 밤시간도 즐겁기만 합니다. 친구들로부터 책을 빌려와 읽기도 하고, 글을 모르는 부모와 친구들에게 책을 읽어 주기도 합니다. 큰 소리로 책을 읽는 아들을 볼 때마다 이브라힘의 부모는 아주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극빈층이 모여 사는 이 곳에서 어린이들이 노동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브라힘은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가 일을 나간 동안 어머니의 집안일을 도우면서 여가시간을 보냅니다. 이브라힘 가족의 생활은 아직 빈곤 속에 허덕이고 있지만 이브라힘은 다카에서 시행되는 도시빈민 어린이 교육프로젝트 덕분에 학교를 다니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기회를 잡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유니세프의 지원으로 2004년 7월부터 지역사회 개발을 위해 일하는 NGO그룹에 의해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교육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6~9세 연령층의 도시빈민 어린이들에게 비공식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다카의 주요 빈민지역에 설립된 200개의 교육센터에서 6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다카와 같은 대도시로 밀려들어오는 인구 때문에 다카에서는 도시빈민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도시인구의 50% 이상이 빈민이며, 그 중 30%는 생계를 꾸리기 힘든 극빈층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부분 혼잡한 슬럼 지역에서 풀이나 대나무로 엮어 지은 임시가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빈민가 어린이들은 교육 부문에서 심한 차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부가 불법거주지인 빈민가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계획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빈민가 어린이들을 위한 공식 교육기회가 아주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몇몇 지역에 있는 공립학교는 화장실 등의 기본시설도 없고 교사의 질도 떨어지는 데다 좁은 교실에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수업을 받는 등 학교환경이 아주 열악합니다. 여러 NGO가 도시빈민가의 비공식 교육센터를 운영하지만 아직 NGO의 숫자가 부족한 형편입니다. 빈민가의 초등학교 입학률은 남녀 어린이 할 것 없이 전국 평균보다 훨씬 낮고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조차 규칙적으로 출석하지 않습니다. 2003년 조사에 따르면 다카 빈민지역의 남자어린이 중 27%, 여자어린이의 24%가 공식이건, 비공식이건 학교 문턱을 밟아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도시빈민가의 많은 어린이들이 이미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남녀 어린이들은 기술을 익힐 기회가 없어 임금이 낮은 일에 종사하게 되고 결국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도시빈민 어린이들을 위한 이 교육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아홉 살 난 마수드도 학교에 다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마수드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마수드는 자신이 졸업 후 가장 도움이 될 과목은 과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솔직히 작문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물을 끓이는 법, 손 씻는 법을 배우기 전에는 우리 가족들이 잔병치레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제가 학교에서 배운 위생 지식들을 엄마한테 알려준 뒤로는 우리 가족들은 훨씬 건강해졌어요.” 마수드의 아버지는 릭샤 운전사이며 어머니는 벽돌공장의 노동자입니다. 학교가 파하면 마수드는 엄마를 도와 벽돌 깨는 일을 합니다. 마수드의 어머니는 벽돌을 깨는 숫자만큼 돈을 받는데 100장을 깨면 대략 1불 정도의 임금을 받습니다. 그래서 마수드는 매일 어머니를 돕고 있습니다. 가계 수입을 한 푼이라도 늘리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저는 벽돌 깨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요. 벽돌 공장은 우리집에서 어무 먼 데다 그 일을 하면 자주 손을 다치거든요 가끔씩 아버지는 집에서 남은 시간에 벽돌 깨는 일을 하라고 벽돌을 집으로 가져오곤 하지요. 일하는 건 싫지만 내 가족을 돕는다는 생각에 불평 없이 하고 있어요.”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기회만 주어진다면 학교에 다니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산재해 있는 문제들은 아직 많습니다. 일하는 대신 학교에 다님으로써 빈곤가정의 가계수입이 줄어들 뿐 아니라 어떤 아이들은 학비나 교과서, 학용품 등의 비용을 감당 못 해 입학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다카에서 여자어린이들의 교육 상황은 훨씬 더 열악합니다. 여자어린이들은 집안 허드렛일을 하거나 아기를 돌보는 등 집안일의 부담이 더 크기 때문에 교육의 기회를 얻기가 그만큼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육받지 못한 여자어린이들은 또한 매춘 등의 위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일곱 살 난 소녀 리마는 위험한 운명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극빈가정에서 성장해 학교에 다닐 가능성이 아주 희박했지만 이 프로젝트의 도움으로 꿈에도 그리던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리마는 학급의 막내이지만 책을 가장 좋아하고 많이 읽는 학생 중 하나입니다. “저는 책이 너무 좋아요. 예쁜 색깔의 그림들을 보는 것도 좋고 단어 하나 하나의 뜻을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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