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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FAQ] 유니세프 Promise 링

  • 2021.01.25
  • 조회수 : 9272

[금주의 사진] 다시 만난 가족

  • 2012.02.06
  • 조회수 : 6956

에이즈고아 스티브 이야기

  • 2012.02.03
  • 조회수 : 15515

[금주의 사진] 꺼져가는 어린 생명

  • 2012.01.31
  • 조회수 : 8525

[금주의 사진] 우리에게 펌프가 생겼어요!

  • 2012.01.25
  • 조회수 : 7965

수마에 휩쓸린 필리핀 - 열대폭우 센동이 판자촌을 강타하다

  • 2012.01.17
  • 조회수 : 10597

[금주의 사진] 우리 둘이 닮았나요?

  • 2012.01.17
  • 조회수 : 7152

[금주의 사진] 더 높이 날고 싶어요!

  • 2012.01.09
  • 조회수 : 8178

[금주의 사진] 새로운 날을 기다리며…

  • 2012.01.03
  • 조회수 : 6903

에릭과 산드린의 꿈

  • 2011.12.30
  • 조회수 : 10330
공지사항 게시판입니다.

[FAQ] 유니세프 Promise 링

  Q.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A.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유니세프 For every child, Promise again 캠페인으로 참여해 주시는 정기후원자님들께 전달됩니다. 다만, 이미 유니세프 정기후원을 하고 계신 기존 후원자분들께는 캠페인 페이지 내 ‘유니세프 Promise 패키지’로 후원하시는 경우에도, 유니세프 Promise 링이 전달됩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을 여러 개 받을 수 있나요? A. 유니세프 정기후원을 진행해주시고 계신 경우, '유니세프 Promise 패키지' 후원금액 3만 원 당 유니세프 Promise 링 1개가 전달됩니다. 단, 정기후원을 하지 않으신 경우, '유니세프 Promise 패키지'를 후원해 주셔도 Promise 링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의 재질은 무엇인가요? A.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스테인리스 소재로 제작되어 알레르기 반응이 거의 없고 인체에 무해한 제품입니다. 다만 장기간 착용 시 물과 땀, 습기 등에 의해 변색되거나 스크래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의 사이즈는 어떻게 되나요? A. 유니세프 Promise 링은 남녀 공용 프리사이즈 오픈형으로 제작되어, 사이즈 조정이 가능합니다. 다만, 큰 힘을 가할 시 손상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언제 배송되나요? A.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첫 후원금 납입일 기준으로 발송됩니다. 상세한 발송 일정은 후원 완료 시 발송된 문자에서 확인 가능하시며, 유니세프 홈페이지(https://www.unicef.or.kr) 로그인 후 마이페이지-발송현황 메뉴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을 받을 주소를 변경하고 싶어요.  A. 주소 변경은 후원 완료 시 발송된 문자를 통해 수정 가능하시며, 유니세프 홈페이지 로그인 후 마이페이지-발송현황 메뉴에서도 수정이 가능합니다. 주소 수정은 발송 예정일 7일 전까지 가능합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어떻게 배송되나요? A.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일반우편으로 발송되며, 발송 후 영업일 기준 1-2주 이내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일반 우편으로 발송되기에, 배송 추적이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Q. 유니세프 Promise 링이 배송 중 분실된 것 같습니다. A. 일반우편으로 발송되기 때문에, 간혹 배송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발송 예정일 이후 2주까지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이후에도 수령하지 못하실 경우 gift.ig@unicef.or.kr 로 후원자님의 성함과 연락처를 기재하시어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Q. 반지가 파손되었어요. 반지를 다시 받을 수 있나요?  A. 유니세프 Promise 링은 약간의 사이즈 조절이 가능하도록 오픈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힘을 주어 변형 시에는 제품이 손상될 수 있으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초기 불량, 혹은 파손된 반지의 경우, 해당 반지의 사진과 후원자님의 성함/연락처/받으실 주소를 기재하여 gift.ig@unicef.or.kr 로 메일 주시면 확인 후 도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금주의 사진] 다시 만난 가족

조지아 쿠타이시 서부 빈민지역에 사는 이 여인은 남편을 잃은 미망인으로 2살과 3살, 4살된 아이 셋을 홀로 키우며 삽니다. 가난 때문에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겼던 엄마는 빈민가정을 위한 유니세프의 지원프로그램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이즈고아 스티브 이야기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의 외곽지역, 햇클리프에서 열 세 살 소년 스티브를 만났습니다. 나이에 비해 몸집이 너무나도 왜소한 소년은 에이즈감염자라고 했습니다. 스티브가 네 살 되던 해 엄마와 아빠는 연달아 에이즈로 세상을 떴습니다. 그 후 형과 함께 공사 현장 주변의 판잣집을 전전하며 살았지만 형이 있어서 스티브는 힘겨운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년 전 형이 결혼을 하면서 스티브에게는 새로운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형수는 스티브가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알고 온갖 욕설을 퍼붓고 구타를 했으며, 스티브가 에이즈 치료제인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지원받을 수 없도록 지원대상명단에서 스티브를 아예 지워 버렸습니다. 스티브는 집을 나왔고, 3년 째 거리에서 먹고 자면서 구걸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작은 깡통을 들고 먹을 것을 구걸하던 스티브는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 놀이방에 몇 번 가본 기억이 나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무 데도 다녀본 적 없어요...”엄마 얘기가 나오자 스티브는 감정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합니다..  최근 스티브에게도 새로운 보호자가 생겼습니다. 위험한 거리를 하루 종일 떠돌던 스티브는 안전한 곳에서 쉬고 싶은 마음에 교회 앞까지 왔고, 그곳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남루한 차림으로 잠든 거리의 소년을 발견한 것은 마이 칫사라는 이름의 교회 신도. 그녀는 스티브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처음엔 아이를 형이 사는 집으로 데려다 주려고 했어요. 하지만 형 얘기를 하자 마자 스티브가 계속 눈물을 흘리더군요, 학대 당한 얘기를 하면서 절대 그곳엔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지요.”이 친절한 여성은 스티브가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고 하라레의 보건소로 스티브를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다시 제공받을 수있도록 아이의 인적사항을 등록해 주었습니다.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스티브는 구토와 설사를 계속해 여러 사람의 애를 태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처음엔 약물 부작용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지금은 거의 회복되어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어요.”스티브는 그녀의 친절과 호의가 고맙기만 합니다. 그러나 거리에서의 생활을 한 순간에 떨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집을 나가 며칠씩 거리를 떠돌아 다니다가 돌아오곤 합니다.   “일주일 전에도 스티브가 집을 나가 경찰과 함께 거리 곳곳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야채 시장에서 서성이는 스티브를 발견했죠.  치료를 열심히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자꾸 집을 나가니 아이의 건강이 매우 걱정됩니다.”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하는 마이 곁에서 스티브는 공허한 표정으로 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 “저도 왜 자꾸 거리로 돌아가게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너무 오랫동안 거리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냥 그곳이 아직도 우리 집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현재 짐바브웨에는 스티브와 비슷한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에이즈로 고아가 된 아이들이 100만 명 이상이며, 약 12만 명의 어린이들이 에이즈감염자입니다.전체 어린이 중 20%가 양육자로부터 학대 당하고 있으며, 12.000명의 어린이들이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 1500원 미만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극빈층 어린이가 350만 명에 이르며, 이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합니다.짐바브웨 정부와 유니세프는 가장 소외되고 착취당하는 이 아이들을 돕기 위해 ‘고아 및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국가실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고아 및 취약계층 아동들을 위한 현금 지원, 교육, 보건, 사회서비스의 확대, 법률과 복지서비스 등 효과적인 아동보호 서비스 증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유니세프짐바브웨사무소 대표 피터 살라마 박사는 이 프로그램의 배경을 설명합니다."빈곤, 학대, 착취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는 일은 아동이 겪고 있는 취약한 삶의 조건을 제거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또한 그 가족들의 능력을 강화해야만 아동의 권리가 지속적으로 증진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소외된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통합적으로 접근해 어린이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것입니다.” 읽고 쓰는 법을 배우는 데 늦은 시기란 절대 없습니다. 2012년은 스티브에게도 새로운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열세 살의 스티브도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됩니다. 글 Elizabeth B. Mupfumira

[금주의 사진] 꺼져가는 어린 생명

최근 어린이 영양실조율이 크게 높아진 아프리카 차드 마오 지역의 영양실조치료센터를 찾은 이 아기는 증세가 아주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차드는 5세 미만 어린이사망률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나라로 어린이 5명 중 1명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생명을 잃습니다.

[금주의 사진] 우리에게 펌프가 생겼어요!

아프리카 말리 서부 카예스 지역의 농촌마을에서 한 소녀가 날아오르듯 힘차게 펌프질을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식수문제로 고통 받던 이 마을에 유니세프가 설치해준 수동식펌프는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기쁨이고 희망입니다.

수마에 휩쓸린 필리핀 - 열대폭우 센동이 판자촌을 강타하다

크리스마스를 1주일 여 앞둔 12월 16일. 연말연시로 들떠있던 필리핀에 열대폭우 센동이 들이닥쳤습니다.센동은 이른 아침부터 10~20mm의 맹렬한 기세로 민다나오와 비사야스 지역을 강타해 하천이 범람하고, 산이 무너지고, 도로와 병원, 학교 등이 파괴됐습니다. 밤이 되자 주거지역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판잣집에 살던 대부분의 주민들이 희생되는 참극이 일어났습니다. 하루 만에 한달 치의 강수량을 퍼부은 이번 폭우로 1,249명이 사망하고, 4,594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1,023명이 실종됐습니다. 1월 초 기준, 총 피해자만 72만 명, 이중 어린이가 31만 명입니다. 수색작업이 더해갈수록 피해자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대피해지인 민다나오의 일리간 시티. 12월 16일 이후 이 곳은 폐허로 변했습니다. 폭우가 도시 전체를 삼킨 지 4일째 되는 날, 바란가이 히나플래논 마을의 산로렌초 성당 계단에서 서로 꼭 안고 있는 소녀와 여인을 만났습니다. 올해 아홉 살이라는 소녀의 이름은 자넬라, 이번 폭우로 엄마와 아빠, 집을 잃고 넋이 나가 있었습니다. 여인은 자넬라의 이모인데 역시 폭우가 쏟아진 날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물살에 두 아이를 잃었다고 했습니다. 이모인 알린느의 품에 안겨 자넬라는 넋이 나간 듯 허공을 한없이 응시합니다. 폭우가 마을을 삼키던 그날 자넬라는 친구들과 높은 산에 놀러갔다가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마을에 물이 들어오는 광경을 두려움에 떨며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모 알린느는 다른 지방으로 볼일을 보러 갔다가 혼자만 살아 남았습니다. 수마가 모든 것을 휩쓸고 가기 전, 자넬라는 이 계단에서 엄마와 나란히 앚아 미사 시간을 기다리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이제 엄마는 없고, 성당은 이재민 대피소로 변했습니다. 자넬라와 이모는 이제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입니다. 대피소에 있는 이재민은 거의가 여성과 어린이로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잃었다는 공통된 아픔을 안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자넬라는 울음을 터뜨려요.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아침마다 대피소 안에 엄마가 있는 지 찾으러 다닙니다.” 조카 얘기를 하면서 알린느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입니다.12월 20일, 대피소 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합니다. 혼란의 시간이 지난 후 깊은 슬픔과 고통은 무거운 침묵이 되었습니다. 간간히 들리는 아기의 울음소리만 정적을 가르고 있습니다. 벽에 기대 지친 얼굴로 갓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젊은 엄마들이 보입니다. 생후 3개월 된 아들 존을 안고 모유수유를 하던 엄마 에밀리도 이번 홍수로 남편과 부모, 언니와 조카를 잃었습니다. 물살이 동네 어귀로 들어오는 걸 본 순간, 에밀리는 백일도 안된 아들을 안고 필사적으로 산으로 달렸습니다. 마을 뒷산에 올라 겨우 숨을 돌리고 마을을 내려다 봤을 때 이미 모든 것은 물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너무나 엄청난 재난 속에서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고 에밀리는 말합니다. 하지만, 어린 아들이 삶의 의지를 다시 찾아 주었다며 이렇게 살아남아 젖을 물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한 일임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아들이 숨을 쉬고 있는 지 살펴봅니다. 열이 조금이라도 오르거나 기침을 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요. 병원은 무너졌고, 도로가 끊겨 의약품도 없습니다. 젖이라도 잘 나와야 할 텐데 엄마인 제가 끼니를 자주 거르니까 그조차 여의치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아기뿐 아니라 여기 있는 아이들 건강이 모두 나빠질까봐 걱정이 됩니다.” 유니세프는 폭우가 발생한 12월 16일 직후부터 현지의 NGO 및 정부와 함께 20만 명의 이재민 어린이를 긴급대상으로 정하고, 구호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폭우가 쏟아진 바로 다음 날 1차로 카가얀 데오로 및 비사야스 지역에 5,549개의 위생키트, 3,995개의 식수키트, 23,000개의 식수정화제와 이동식수통, 임시화장실 등 식수위생의 긴급구호품을 보냈습니다. 그 이후 모유수유와 영양전문가를 이재민대피소로 급파해 영유아 건강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살아남은 아이들의 가족을 찾아주고, 정신적인 충격을 치료하는 사업도 지원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들을 위해 상담을 실시하고,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일상의 평화를 되찾도록 축구공과 블록 등이 들어있는 놀이용품키트를 대피소로 보내고 있습니다. 대피소에 밤이 찾아옵니다. 고요하던 낮과는 달리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비명과 신음이 여기 저기서 뒤섞이기 시작합니다. 예기치 못한 재앙 앞에서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 대피소의 차가운 밤이 이들이 토해내는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저물어갑니다. ""

[금주의 사진] 우리 둘이 닮았나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지역 유아원에서 두 어린이가 선글라스를 쓰고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유니세프는 이 지역 유아원에서 교육과 보건프로그램을 지원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어린이사망률은 매년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매해 2만 명 이상의 5세 미만 어린이가 사망하고 있으며, 10%의 어린이는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합니다.

[금주의 사진] 더 높이 날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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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사진] 새로운 날을 기다리며…

우간다 북부 아크왕 지역 소년들이 축구를 즐기고 있습니다. 오랜 내전의 아픔을 겪은 우간다는 아직도 빈곤과 혼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꿈을 키워가는 어린이들이 있기에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에릭과 산드린의 꿈

2010년 11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선거는 많은 희생을 낳았습니다. 당시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이 패배에 불복하면서 내전이 촉발돼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3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72명이 실종됐으며, 520여 명이 불법체포를 당했습니다. 16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코트디부아르를 떠나 이웃나라 라이베리아로 피난을 갔습니다. 라이베리아 동쪽의 님바, 그랜드 게데, 메릴랜드, 리버지 등에는 6개의 대규모 난민촌이 생겼고, 난민이 된 코트디부아르인들은 내전이 끝난 후에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난민촌에 남아있습니다. 80% 이상이 여성과 어린이입니다.열 두 살 소년 에릭은 내전에 휩싸인 고향마을에서 도망쳐 6개월 전 난민촌으로 왔습니다. 에릭은 고향마을을 떠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군복을 입고 권총을 든 남자들이 갑자기 마을에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했어요. 엄마 아빠와 전 너무 무서웠어요. 며칠 후에 엄마,아빠는 짐을 싸기 시작했어요. 먹을 것과 옷가지들만 몇 개 챙겨서  동 트기 전 캄캄한 새벽에 집을 나섰죠. 아빠는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전 우리가 피난을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며칠 동안 내내 맨발로 걸었어요. 가는 길에 숲도 지났고, 강도 건넜죠. 오는 동안 어린 여동생들은 내내 울기만 했어요. 때때로 저도 울고 싶었지만 전 오빠니까 꾹 참고 동생들을 달랬어요. 엄마, 아빠와 동생들 모두 함께 피난 오게 돼 정말 다행이에요. 이곳에 있는 많은 친구들이 엄마, 아빠와 헤어져서 소식도 못 들은 채 살고 있거든요. 이곳 생활이 힘들긴 해도 학교도 있고, 친구들도 있어서 견딜 만해요. 그래도 항상 우리 집이 그리워요.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겠죠?” 에릭의 학급친구 산드린은 난민촌에서 혼자 살아가는 소녀입니다. “내전이 시작될 즈음에 엄마가 많이 아팠어요. 아빠가 엄마를 수도 아비장에 있는 큰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바로 그날 마을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나타나더니 사람들에게 마구 총을 쏘기 시작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온 마을에 비명이 넘쳐흘렀죠. 이모가 오더니 동생들을 데리고 빨리 도망치라고 했어요. 저는 남동생 4명을 데리고 어른들을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라이베리아로 오는 도중 저는 동생들과 헤어지고 말았어요.”지금 산드린 곁엔 아무도 없습니다. 그날 이후 부모님과 이모, 동생들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산드린은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간호사’의 꿈을 가진 산드린은 자신의 꿈을 늘 격려하고 용기를 주었던 엄마를 떠올리며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고 야무지게 얘기합니다. “엄마를 만나는 날 제가 여기에서 보낸 시간들을 자랑스럽게 말할 거에요. 빨리 엄마를 만나 제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최근 라이베리아 난민촌의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습니다. 코트디브아르 난민들이 유입되기 전에도 이미 취약했던 라이베리아의 보건•사회시설들이 더 악화됐기 때문입니다.코트디부아르 사태 즉시 유니세프는 라이베리아의 난민촌 어린이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위기상황에서도 계속 교육받을 수 있도록 난민촌 안에 학교를 짓고 학습용품을 제공하는 일은 유니세프의 가장 중점적인 사업 중 하나입니다.학교는 어린이를 학대와 착취로부터 보호해주고, 일상의 평화를 되찾아 주는 곳입니다. 유니세프는 난민촌 어린이들이 훗날 코트디부아르로 돌아갔을 때 상급학교 진학에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 난민촌 교사들을 훈련해 어린이 교육을 돕도록 하고 있으며, 더 많은 교실을 짓고, 코트디부아르 교과서와 학습교재도 지원합니다.난민촌의 유니세프학교 5학년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에릭과 산드린처럼 고향을 떠나온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난민 어린이들은 난민촌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가족과 헤어진 슬픔을 이겨내야 하며, 때론 직업이 없어진 아빠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도,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학교에 매일 갈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친구들이 있어 위로 받을 수 있고, 공부를 하면서 꿈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릭이 코트디부아르에서 들었던 얘기는 전쟁과 폭력, 살인, 유괴뿐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 단어들을 듣지 않게 된 것이 기쁘다면서 에릭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꿈을 얘기합니다. “전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학생들이 늘 닮고 싶어하는 그런 멋진 선생님 말이에요.”12월 현재까지 3만 5천 명 이상의 코트디부아르 어린이들이 유니세프가 지원하는 초등교육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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